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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출신의 영화감독 아스가르 파르하디는 인간의 내면과 사회적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이다. 오스카상을 수상하며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그는 단순한 연출을 넘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영화 인생과 세계관, 그리고 그를 거장으로 만든 핵심 요소들을 알아본다.
1. 어린 시절과 영화 인생의 시작
아스가르 파르하디는 1972년 5월 7일, 이란의 이스파한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이란 혁명과 전쟁이라는 격동의 시대와 맞물려 있었다. 사회가 극도로 분열되고 불안정하던 당시, 파르하디는 인간 관계 속의 갈등과 모순을 자연스럽게 목격하며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연극과 문학에 흥미를 보인 그는 청소년 시절 지역 극단에 참여하며 이야기 구성과 감정 표현에 대한 감각을 키워갔다. 그는 테헤란 대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한 후, 타란 대학교에서 영화 제작 석사 과정을 밟으며 본격적인 영화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라디오 드라마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경력을 쌓았고, 2003년 장편 데뷔작 ‘춤추는 먼지들(Dancing in the Dust)’로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는 이란 사회의 빈곤과 인간의 존엄성을 동시에 조명한 작품으로, 파르하디 특유의 현실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시선이 돋보였다. 파르하디는 이후 ‘화해를 위한 노래’, ‘불면의 밤’ 등을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으며 이란 영화계의 기대주로 부상했고, 2009년작 ‘엘리에게(Eli about Elly)’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2011년작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의 영화는 단순한 사건을 넘어서 인간 내면의 복잡성과 도덕적 딜레마를 치밀하게 그려내는 데 중점을 둔다.
2. 파르하디 감독의 영화적 세계관
아스가르 파르하디의 영화는 대부분 일상의 소소한 사건에서 시작되지만, 그 안에 내포된 갈등은 점점 커지며 인간 본성과 사회적 구조를 드러낸다. 그의 대표작인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단순한 부부 이혼 문제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종교, 계층, 도덕이라는 복잡한 문제들이 얽히며 관객에게 깊은 사유를 요구한다. 이러한 구성은 파르하디 특유의 "중립적 서사 기법" 덕분이다. 그는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각 인물의 입장과 선택이 어떻게 서로 충돌하며 사회적인 파장을 낳는지를 치밀하게 보여준다. 또한 파르하디의 영화는 "보여주기보다 숨기기"를 선택하는 서사 전략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주요 사건을 화면 밖에서 처리하거나, 인물 간의 진실이 모호하게 묘사되면서 관객이 능동적으로 판단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극적인 긴장감을 높이는 동시에 인간 관계의 복잡성과 불완전함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그의 세계관은 개인의 선택이 사회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심도 있게 다룬다. 특히 여성과 아이들의 시선에서 사회 문제를 비추는 점이 인상적이다. ‘엘리에게’에서는 한 여성이 사라진 사건을 통해 공동체의 위선과 불신이 드러나고, ‘세일즈맨’에서는 부부의 침묵 속에 감춰진 트라우마와 복수가 중심 주제로 등장한다. 이러한 주제들은 단순히 이란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누구에게나 통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와 연결되어 있다.
3. 국제적 성공과 영화계에서의 위상
파르하디는 이란 내에서의 성공을 넘어, 국제 영화계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011년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이후, 그는 이란 영화사상 최초로 오스카 2회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운 감독이 되었다. 두 번째 수상작은 2016년작 ‘세일즈맨’으로, 이 작품 역시 인간 내면의 복잡한 심리를 현실적인 시선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그의 작품은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 3대 영화제를 비롯해 토론토, 트라이베카, 산세바스티안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영되며 늘 화제를 모았다. 또한 비영어권 영화로는 드물게 북미와 유럽에서 흥행 성적을 올린 사례로 기록된다. 이처럼 그의 영화는 언어와 문화를 초월해 전 세계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파르하디는 단지 이란 감독이라는 정체성을 넘어, 세계 영화의 지형을 바꾸는 작가로 평가된다. 특히 그는 정치적 검열과 표현의 제약이 심한 환경에서도 은유와 상징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그의 영화가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 예술적·사회적 메시지를 동시에 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현재 유럽과 이란을 오가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프랑스어 및 스페인어 영화도 제작하며 세계관을 확장하고 있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인간은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관객의 감정과 사고를 자극한다. 이러한 점은 시네필, 영화 제작자, 철학자 모두에게 끊임없는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아스가르 파르하디는 단순한 영화감독이 아닌, 인간과 사회를 통찰하는 이야기꾼이다. 그의 작품은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갈등과 선택을 다루며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앞으로도 그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그려낼지 기대하며, 그의 영화 세계를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길 바란다.